외환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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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구원투수 조회 113회 작성일 2021-12-08 05:59:5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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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관리법에 대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촬영 중 카메라를 만지다가 노이즈 현상이 일어나는 부분이 생겨서 기 부분은 소리를 뺐습니다.
39 Kinoshita : 경험이 없어서 전문용어등도 잘 모르는데 무슨 중독된거처럼 영상을 계속보다가 이제는 구독까지.. 인상도 너무 좋으시고 구수한 같은충청도냄새도나고, 무엇보다 또다른 형태의 목사님이나 스님같은 존재로 느껴집니다. 남은 인생, 가족분들과 같이하는 행복한 시간으로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전 일본동경에서만 32년째, 재일교포와 다른 뉴커머스1세대입니다. 마지막은 역시 가족이란걸 새삼 느끼는 요즘입니다.
암울량 : 얼마나 아팠을까 철봉이형..마음이..
지금 웃으면서 이야기ㅜ하시니 다행이지만..이제는 맘 고생없이 행복하세요
베가스 : 실생활에 큰도움 되는 좋은 얘기입니다~ 구독 누르고 갑니다! ^-^
Donkey G : 철봉님~ 얘기를 너무 재미있게 하셔서 자주 봅니다~~ 화이팅~~
엣지. : 꼭! 알아둬야할것같네요 ᆢ시청잘듣고갑니다 *^^*화이팅!

2020년 외환전문역1종 외환관리실무 정규이론

이패스코리아입니다.
외환전문역1종은 외환관리실무, 외국환거래실무, 환리스크관리까지 총3개과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중 1과목인 외환관리실무가 가장 까다롭죠.
무엇보다 외환관리실무는 매년 개정이 됩니다. ;;; 2020년 외환관리실무 개정본이 8월에서야 발간되어 이패스코리아에서도 신규강의를 9월에 런칭하였습니다.!

용어때문에 겁부터 먹는
외환전문역! 이패스코리아와 함께하면 절대 어렵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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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IMF 외환위기'.. 실제 위기의 순간은 이런 모습이었다

1997년 11월 21일, 꼭 21년 전인 이날, 한국 정부는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게 됩니다.

구제금융 지원 이후, 정부, 재계, 민간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혹독한 시기를 겪게 되는데요..

대우, 한보, 한라, 나산그룹, 극동건설, 거평그룹, 미도파 등등
수많은 기업들이 줄도산하고, 그 결과 실직자들이 넘쳐났죠.

금모으기 운동 등 똘똘 뭉쳐 위기를 타개하고자 하는 한국인들의 저력을 보여주는 일들도 잇따랐습니다..

단군 이래 최대 환난이라고 불렸던 IMF 외환위기, 구제금융 신청부터 6일 간의 과거 영상들을 모아, 당시 위기의 순간들을 재구성해봤습니다.

[구성:장미일, 편집: 김혜림]
New Guru : 음식값 10%내린 사장님 진짜 레알 멋있다 같은 인간으로서 진심으로 존경한다. 영웅이 멀리 있는 게 아니다 힘든 상황에 엄두가 안날 때 그 엄두가 안나는 일을 의연하게 실행으로 옮기는 저 사장님같은 분이 진짜 영웅이다. 지금 어디에선가 돈 몇십 몇백 배 잘 버셔서 떵떵거리면서 살고 계셨음 좋겠다.
으찌그래용 : 저 이때 11살이었는데 학교에 가면 부모님이 일자리 잃은 친구들이 많아서 가슴 아팠던 기억이 나네요... 어린 나이였지만 나라가 망하면 평상시 당연하게 누려왔던 일상의 행복들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죠.. 박세리 골프선수가 맨발투혼으로 국민들에게 용기를 줬던 게 생생히 기억나요
z모찌모찌 : 97년도 7살이었고 어릴 때라 imf 터지자마자 바로 집안이 어려워지진 않았지만 1년 뒤 여름방학 때 아빠께서 당시 부서 팀장이셨는데 총대매고 실직 당하시고 집안이 어려워졌던 것이 기억에 남네요. 또 엄마 손잡고 은행가서 돌반지 모두 팔아 버린 것도 기억하구요. 당시에 집안이 어려웠어도 뭣도 모를 때라 imf의 고통에 대해서 엄청 생생하게 느낄 순 없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금모기 운동하느라 돌반지 하나 없다는게 좀 씁슬하기도 해요.
빨간돌 : 그냥 눈물난다. 난 군대에 있어서 잘 몰랐지만... 제대하고 한참 후 아버지 어머니가 매일 괴로워하셨다고... 면회오실땐 그래도 통닭이며 뭐며. 바리바리 싸오시고, 용돈도 줘주셨지...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고싶다..
097 : 터지고 열흘 뒤에 입대했다. 기름이 없어서 밤에 보일러도 조금만 틀고; 기갑병이없는데 훈련도 드라이로만 했었던 기억이 난다. 오히려 군에 가있는게 다행이라며 환율 소식 전해주던 어머니 편지가 생각난다. 난 당시 산업의 역군은 아니었지만, 당시를 이겨낸 우리 부모님 선배님 세대들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하다. 박세리의 우승 소식도 참 큰 힘이 되었다. 다시는 저런 치욕적인 일이 생기지 않는 나라를 만들어야 되는 나이에 와있는데, 지금의 대한민국이 당시보다도 더 역동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거칠고 투박하고 리스크 관리 못하는 당시였지만 그래도 가슴은 뜨거웠는데... 안타깝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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